결혼식장을 갔다 오는 길에 이마트에 들렀다.. 지하 식품점에 내려가는데, 위의 빵을 특판 가설대에서 팔고 있다. 문득 옛 생각이 나 몇 개 사서 집에 와 보니, 옛날 보다 빵이 작게 보인다. 팥도 적은 것같지만 혹 고교시절에는 커게 보였는지도 모르겠다. 천원을 주면 빵을 3개인가 4개를 주었는지 혹은 2개를 주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지만, 친구 相은 자기가 산 빵을 먹지 않고 내보고 다 먹어란다. 자기는 방금 밥을 먹었단다. 나보다 2살 위였지만 당시 친구처럼,부산의 중학교 시절부터 방학 때 밀양 가면 같이 붙어 다니며 친하게 지냈던 것이다. 큰 구두상을 하여 우리 집보다 넉넉했던 상은 한창 허덕이던 나를 위해 무엇이던지 해 주었다. 자기가 좋아하던 하모니카도, 내가 가고 싶다고 하는 곳은 언제나 같이 가 주었던 것이다. 친구는 친 형제보다 더 나를 위해서 신경을 써주고 나도 친구를 잘 따라 매일 친구집에 살다 시피하며 친구 어머니가 차린 밥도 우리 집처럼 먹고 들락거렸다.내가 철이 없었지만, 그 어머님은 언제나 웃으시면서, 대구 공고를 나와 대학을 가지 않고 집에 있는 장남의 기분을 맞추기 위해 상이 원하는 것은 무엇이던지 해 주었던 것이다. 참 좋은 친구며 형이였다. 우리들의 추억은 글로 다 적을 수없는 많은 일들이 있었지만 항상 상은 나를 감싸주었다.
정신이 혼미하여 부산병원에 갔다, 내가 없는 부산의 우리집을 가르키며, 양복 한 벌 해입고 서울의 나를 만나러 가야겠다던 相이 죽기 얼마전 나에게 보낼 여러 글씨와 물건들을 태우고 집을 나가 다시 못올 곳으로 갔다고 그 이듬해 친구의 동생이 서울의 나에게 연락이 왔던 것이다. 아직도 국선에 입선한 상의 붓글씨가 나에게 두 점 남아있다. 바쁘게 살아 가다 한번씩 생각나지만, 친구의 집 행사는 언제나 빠지지 않고 다닌다., 전에 처럼 밀양에 자주 가지 않으니, 90이 넘은 친구의 부친을 못 뵈온지가 2-3년이 지난 것같네. 상을 그렇게 애지 중지하시던 모친은 오래전에 먼저 상이 있는 곳으로 가셨다. 결혼식에서 만나면 상의 여동생들이 오빠하며 나를 보고 울기도 한다. 그렇던 마음들이 세월이 흐르면서 서서히 마름되어 간다. 오늘 저 빵을 보면서 친구의 애절한 사연이 떠올라 마음 아프다. '나는 방금 밥을 먹어 먹고 싶지 않으니 너 다 먹어라" 하던 그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같다. 그래 친구여 언젠가는 하늘 나라에서 만나 지난 일을 이야기 하자.. 사랑하는 친구여, 형이여. 저런 모양의 빵이였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