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성산 토막 (내원사 입구)

산같이 산과 같이 2011. 6. 8. 11:55

 

 

 바람이 불면 나뭇가지들이 은빛으로 뒤집혀 반짝인다. 이제 초노에 접어든 나의 희긋 흐긋한 머리를 들면

푸른 하늘이 있고 산 자락엔 추억이 웅크려져 있다.맑은 계곡 물에 흔적을 씻으면 씻을 수록 마음 깊숙히

자리하는 건 퇴색되어 가는 기억의 아픔이다. 이 산을 너무 좋아했다. 항상 외로울 때 혼자서도 자주 가던

산이다.그 나무 그 언덕 ,노년의 작은 쉼터를 만들고 싶어 요즘 몇 번 들렀지만, 아직 잡히는 것이 없다.

 

마침 입구에 사진처럼 조합이 형성되어 재개발이 이루어 지고 있다. 지지부진하여 몇 년채 이루어 지더니,

최근엔 공정이 많이 진척되어, 4년전 사진인 위보다 휠씬 정돈되어 있고,중간의 도로와 구획정리가 잘 되었다.

산쪽에도 천주교 석계묘지 하늘나라 건축시 나온 자연석으로 축대가 2중으로 쌓여있어 놀랐다. 여기는 전에도

민가가 있어 대지로 양산시의 허가가 났지만, 여길 제하고는 대지를 만들장소가 없다. 그러나 더욱 놀란 것은

이름만 들어도 알만한 재벌들의 땅이 많다는 것이다. 여기까지 이렇게 땅을 사 놓아야 하는지 씁쓸하다.

 

워낙 좋아하는 산이라, 작은 연고를 만들려고 생각하고 있다. 2-30평이라도 작은 황토방을 짓고 아침에 일어나

계곡을 걸으며 생각도 하고 옛날 처럼 본 절까지 걸어갔다 걸어오면 상쾌한 솔향기가 폐부를 감싸겠지.

부산 경남에서 여기처럼 계곡이 좋고, 물이 좋은 곳은 없다고 생각된다. 기억도 없는 어머니의 품이다.

산을 파헤치며 여기 저기 떠돌던  철없던 청춘이 이제 노년이 되어 어머님를 찾고 있다.

 

어제밤 밖을 떠돌다 미안해 집으로 돌아오는 꿈을 꾸었다. 할머니가 깨지 않도록 급히 아침에 집으로

돌아오는데 꾀째째한 모습의 집사람이 아침 먹을 건가요? 하고 물었다. 속으로 미안해서 그래 빨리 회사가야지 했다.

손녀인 것같은 두 딸애를 어루만지며, 학교가야지..하고 말했다.. 꿈이였다. 

 

 

 

 

최근의 사진(위) -- 산쪽 축대의 자연석은 돈 주고도 사기 어렵다고 조합장이 말한다. 축대 밑에 1m정도 넓이의 실개천이 흐르도록

콘크리트 도랑 공사가 되어있다. 내원사쪽 산위에서 개울로 내려가는 것을 일부 이쪽으로 돌려놓아, 지금도 물이 흘러가고 있었다.

민간인 공사 치고는 너무 예술적이다. 처음엔 콘크리트 옹벽을 치기로 되어 있었던 것을 마침 천주교 하늘 공원 공사때 나오는 자연석을

이쪽으로 옮겼다고 한다. 더 튼튼하고 자연적인 모습으로 비용도 옹벽공사의 2/3 정도 들었다고 한다. 현장 공사 소장이 해병 440기인가

기압이 들어 구경하고 묻는데에도 친철히 안내하고 도면도 뽑아주고 커피도 가져온다. 해병만이 알고 이해하는 끈끈한 情이다.

 

 

 

체비지 윗쪽(1-5블록)이 개울쪽이며 준 주거지역으로 용적율 70% 7층까지 건축이 가능하고, 큰 길 중간과 뒤의 7-13 블록이

산쪽인데 주거지로 60% 용적율에 4층까지 건축이 가능하단다.처음 13블록의 작은 터 70 평을 이야기하고 있었는데, 지주가

별로 팔고싶지 않은지 뭔가 끌고 있다.모양이 직 사각형이라 조끔 마음에 결렸지만, 어차피 큰 집을 짓고 살 것은 아니고, 대지와

붙은 10M 도로 앞엔 바로 산이고 실개천이 흐른다. 정원이 따로 필요없단다, 10분 정도 걸어 새로 놓아질 다리를 건너

내원사 매표소쪽으로 가면 천성공룡이 보이는 본 계곡에 펼쳐있는데, 대지의 커고 작은 것이 별 문제가 되지 않았지만, 인연이

안되는지 다시 12블록의 작은 한 필지를 2등분하여 산쪽으로 갖는 것을 흥정 중이다. 어제 하루동안 확인차 두번을 다녀왔다.

은퇴 후 작은 흙집을 지어면 부산과 가깝고, 10분 걸어가면 시외버스 정류장이 있어, 그리 외지지 않은 것같다.

 

아주 옛날 이불을 들고, 버스를 타고 여기 입구(맨위 사진에 보이는 도로 가)에 내려 지게꾼을 부탁하여, 한시간 정도 걸어 내원사

본절 위의 토굴까지 걸어올라갔던 것이다. 고교를 막 졸업하고 생전 와 본 적이 없는 이곳을, 아버님의 이야기만 듣고 무작정

산에서 공부하겠다고 집을 나선 것이다. 한 시간이나 걸어 올라간 토굴에 스님이 출타중이라, 다시 그 분과 함께 성불암으로 와

하루 밤 자고, 익성암에서 몇 달 묵다 안적암으로 옮기게 된 것이다. 지금 보면 거리가 엄청 먼 곳인데, 지게를 부탁받은 그 분이 

어린 학생을 위해서 수고하셨던 것이다. 고마우신 분이였다. 천성산, 내원사의 인연은 그기서 시작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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