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가지의 감정이 얽힌 베트남.. 10년전 내가 3년 동안 공장을 관리할 때 데모가 없었는데,, 세월이 지나
모든 것이 변하니, 어제 저녁 공장에 데모가 있어, 일부 설득하여 3 개공장중 한 공장만 작업에 들어갔다.
그나마 일부 공원들이 팀에서 벋어나, 마음 서리도록 정을 나타내며, 야간 12시간을 뻗되어 주었다..
아침에 다시 교대시간에 약간의 동요가 있었지만, 전부 들어와 3개 공장이 다 돌아간다. 지금의 법인장이
부임만지 5개월동안 , 감성적 어프로치로 급여를 15%나 올려, 쉽게 가다보니 회사서 문제가 되고 업무관리도
미숙하여 좀 익숙해지기도 전에 큰 문제들이 터져,회장님의 인사 결정으로 새로운 법인장을 데리고 온 것이다.
이번주 부터 부임하는 새 법인장은 우리 업계에서 오랜 경륜과 실력이 뛰어나다. 몇 년후배지만 5년전에
2년 정도 이곳에서 근무하다, 외동 아들이라 어머님의 치매로 한국으로 들어갔던 것이다.5개월전 지난 5년간
근무하던 Y 법인장을 교체할 때 , 이 친구를 추천하였지만, 우리업계 경험이 없는 회장님의 친지가 들어왔던 것.
금년말 회사 제대를 생각하고 있던 나는 강하게 어필하지 않고 그냥 수긍하고, 열심히 교육을 시켜보냈는데, 역시
문제를 많이 만들어 오너와 코드가 깨어진 것이다. 오너도 당신의 잘못을 시인하고, 전에 추천했던 새 법인장을
피컵하기로 했던 것이다. 나는 공장및 바이어쪽에 여러가지의 양해를 구했지만, 역시 필요한 사람이 온 것이다.
내가 쓴 사이공 사이공 책에서도 나타내었지만, 인간은 특히 전쟁을 오래껶은 베트남 사람들은 매우 현실적이다. 다른
말로 하면 배신도 실질적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다. 그러니 모든 것이 합리적이고 마땅해야 붙어있는 것이다. 회사란
비젼이 있던지, 아니면 현실적으로 근무시스템과 환경이 잘되어 있으면 쉽게 익숙하여 떠나지 않는 것이다.
정나미가 떨어질 것같지만, 또 다르게 환히 웃어오는 그들을 보면 마음이 돌아선다. 40년전의 한국의 노동자처럼 어려운
환경속 고단한 일도 마다않고 하는 그들이지만 좀더 나은 환경과 조건을 그릴 것이다. 자기들 식의 의리도 강해 단결력이
좋고 위험도 마다하지 않는다.. 세상사 다 마찬가지. 좋은 곳에 모여들고, 잘 살기 위해 노력하는 것을 잊어서는 안된다.
오늘 저녁 비행기로 들어간다. 사이공 강변의 랜드마크 빌딩, 불산서 식당 카프리서 바이어와 식사와 아마 포도주 한 두병하고
공항으로 바로 나갈 것이다. 나는 떠나고 사이공은 남는 것이다. 나는 떠나고 미련과 추억은 사이공의 몫이다. 이제는 자꾸
마름되어 가는 사이공에 대한 情과 마음이 카프리스에 앉어보면, 멀리 은은한 자동차와 네온사인 불빛처럼 흔들리고 있다.
( 공장 증축 현장과 데모에 가담하지 않고 따돌림을 당할 것을 각오하고, 야간 작업을 고수한 정겨운 작업자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