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 수년전인가 보다, 2년정도 인도네시아에서 안정되지 못한 생활에 몸이 피폐되고
마음이 고단한 상태라 귀국하여 이내 책을 몇 권 사들고 통도사 수도암에 두달 정도
들어가 몸과 마음을 정리하며 지낸 적이 있다. 절 앞의 기상이 넘치는 높은 소나무가
수 십 거루 있고, 마당 앞쪽에는 대나무 밭이 넓게 펴져있고,세멘트를 치지 않은 마당에는
군데 군데 채송화, 맨드라미, 봉숭화 등 여러 꽃들이 피여있었다.
절에는 지금은 입적한 홍파스님이 계셨다. 당시 조계종 종정을 하신 월하스님의 문하로
참선을 하신 스님이였는데, 환갑을 갓 지난 스님으로 부산상고를 나와서 출가를 했다고 했다.
건강, 간이 좋지않아, 절에서 투병하고 계셨는데, 내가 나오고 나서 몇개월 후에 돌아가셨다고
들었다. 당시의 절은 본채과 요사채 각 하나로 단출해도 오래된 깊은 산골의 절같은 분위기였다.
내가 가지고 들어간 책 중에는 "내 옆에 온 부처" 등 성철스님에 대한 이야기를 적은 책과
성철스님이 써신 돈오돈수에 관한 책등이었다. 나는 지금 세세히 기억은 못하지만 성철스님을
중다운 중으로 존경하는 마음이 들었고, 그 분이 정말 세상 일에 대한 깊은 사색과 뿌리에 대한
공부를 완성한 분이라는 생각에 놀라고 있었다.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이다' 한마디에 함축된다.
사실 나는 중들의 무책임하고 추상적인 언행을 싫어하는 스타일이다. 처음에 법정스님의 무소유를
읽고 별 감동을 받지 않았던 것도. 난초를 관리못하여 버린다는 생각은 출가한 사람의 입장에서
몸을 가볍게 한다는 것일 뿐이지, 속세의 생활인에게는 맞지않는 생각이 들었고, 무소유 이전에
무책임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고 별거 아닌 것을 타이틀만 커게 잡았다는 느낌이였다.
물론 지나친 소유, 자기의 분수에 맞지않는 소유는 금물이라는 뜻으로 법정스님도 그렇게 이야기 하신
것으로 믿고 싶다. 스님이 입적한 후, 무조건'무소유'가 무슨 대단한 것인냥 이야기하는 것에 놀라고 있다.
스님의 '아름다운 마무리'책을 보면서 현실적인 바탕으로 글을 써신 것이고, 또 문체가 유려하여 좋았다.
한마디로 보통의 인간적인 관점에서 존경심이, 또 공부하시는 자세가 훌륭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수년전 해병산악회 카페에 글을 올리면서 재미삼아, 섹스도 이 자세 저 자세 다해보다, 최후에는 기본 자세로
돌아오는 것처럼,성철스님도 이런 저런 방법으로 진리찾기에 몰두하다 진리란 바로 현존의 실체임을 발견하신것 같다.
진실은 단순하고 현실적인 것인데, 사람들의 각기 다른 시각에 왜곡되어 왔다고 본다. 인생이란 한정된 여행길이다.
간혹 그 진리를 잊는다. 철들자 죽는다는 말은 인생의 선각자들이 남긴 멋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