後世의 욕망에서 해탈함으로서 부처가 되었다.-는 석가모니의 이야기를 언제가 읽은 것같다. 그 당시
내가 이해한 것은 그 분이 후세보다 現世의 중요성을 깨달음으로서 실질적인 삶의 의미를 깨우쳤다고 보았다.
성철스님이 그러하였고, 오늘 다비식을 치룬 법정스님도 그러하다고 생각된다. 그렇다고 너무 현실적인
것을 알아 탐욕에 빠진다면 그것은 일반 중생보다 못한 돌중이 되는 것이리라. 일반 중생도 삶의 길에서
착한 일을 하고 자신의 위치를 지키고 성실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을 본다. 바로 생불들이다.
영악하되 착해야 참 스님이 될수있고, 많이 알고 박식해도 양심의 소리를 외면하지 않아야 바른 중생이다.
성철 스님은 산중에서 참선을 통해 우뚝 선 큰 스님이며, 법정스님은 현실 세계에서 참된 행동을 한 고승이다.
두분다 불교계의 뛰어난 분들이다. 그러나 무소유 무소유하며 너무 주위에서 요란한 것같아, 걱정된다.
성철스님도 가진것 하나없이 좋은 말씀만을 중생에게 던지고 가셨으며, 이 세상의 모든 사람들도 돌아갈 때는
무소유가 되어 흙으로 가는 것이다. 법정스님의 아름다운 마무리에 나와있는 글을 보면, 진작부터, 병이 중해지며
임종게의 의미와 舍利에 대한 생각, 즉 마즈막 일을 그리고 계신 것이다. 13세기 송나라 조원스님의 임종게를
인용해 놓으셨다.
부처니 중생이니 모두 다 헛것
실상을 찾는다면 눈에 든 티끌
내 사리 천지를 뒤덮었으니
식은 잴랑 아예 뒤지지 말라.
또 조주 스님의 임종 때 제자에게 한 을 적어놓으셨다.
"내가 세상을 뜨고 나면 불태워 버리고 사리 같은 걸 골라 거두지 말라.
선사의 제자는 세속인과 다르다. 더구나 이 몸뚱아리는 헛것인데 사리가 무슨
소용이냐, 이런 것은 당치 않다"
우리 나라의 많은 종교 지도자들 , 그 중 잘 알려진 김 수환 추기경, 성철스님 그리고 이제 법정스님 , 이 분들의
말씀과 글을 읽으면 진리가 자연스럽게 물 흐르듯이 흘러감을 느낀다. 박식하며, 진정 실천하는 도덕심과 양심을
느낄 수있었던 것이다. 왜냐하면 추상적이 아닌 현실적인 바탕에 근거를 했기 때문이다.
법정스님의 진정한 마음은 그런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아무리 가난해도 마음만 있다면 남에게 줄것이 있다는 좋은
말씀을 남기셨지만, 장학금을 줄려면 돈이 있어야 되니, 출판사에 독촉을 하고 또는 거금을 관리하시고 어찌보면 돈과
가깝게 접하신 스님이 아닌가 생각된다. 그러나 그 상처받기 쉬운 돈을 올바르게 사용하신 것임에 틀림없는 것같다.
소유된 것을 적절하게 사용하는 마음이 진정한 무소유의 마음인 것이다. 소유한다는 것, 지식을 갖는다는 것, 높은 자리에
앉는다는 것 자체가 나쁜 것이 아니다. 어떻게 그것을 사용하고 원용하는 것인가에, 달렸다고 생각된다. 우리가 법정스님의
진정한 뜻을 기리려면 조용히 생각하며, 그 분의 마음을 헤아려서, 추상적인 개념으로 법석을 떨지 않아야 하는 것이다.
지금도 수많은 수도승이나, 또는 주위의 중생들이 자신들의 길에서 묵묵히 걸어 가고 있음을 알고 있다. 어제 오늘의 몇 사람의
뛰어난 언행이 아니라도,조용한 진리를 안고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이 있다. 삶에 기본적인 소유도 갖지 못한 사람도 있는가 하면,
분에 넘치는 소유를 가진자들도 있다. 책임없는 무소유가 아닌, 책임있는 소유가 바로 법정의 "무소유 마음"으로 해석하고 싶다.
"말 빚을 저 세상에 갖고 가기 싫으니, 나의 책을 더 이상 출판하지 말라". 인간적이며, 어찌보면 고해적인 말씀이 아닌가?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