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달 인도네시아 출장을 앞두고 옛날 사용하던 인니어를 한번 복습해볼까 싶어 인제대앞에서 책을 한권 사 막 회사로 들어오는데
정문앞에서 택시가 서고 사람이 내린다. 이 사장이네. 전화로 점심시간에 온다고 하더니, 몸이 좋지않아 택시를 타고 왔나 보다.
그러니 벌써 10년전의 이야기다. 해백회(해운대 백수 클럽)를 만들어 당시 잠시 실직해 있던지 혹은 반 백수의 몇 친구들과 일부 여자 등산
후배들도 끼인 사교(?) 클럽이였느데, 보통 송정의 길카페나, 기장의 3천원짜리 칼국수집에서 차와 식사를 떼우곤 했지만, 바람부는 겨울 바다를
바라보며 소주를 기울이던지, 경주 코오롱이나 물천리CC등 싼 골프장, 또는 근교산을 등반하기도 했던 때, 이 사장을 만났다.
해백회의 멤버이며 나와 중학교 동기이며 큰 사고를 함께 낸 S가 친구라고 어느날 함께 왔는데, 알고 보니 같은 업계의 있었던 한량 타잎의
호쾌한 성격의 인상이였다. 한때 큰 회사를 가지고 있었는데, 동남은행이 부도가 나, 자금 땜에 그 회사를 넘겨주고 작은 사업을 하던 친구였다.
넘겨준 그 회사는 지금 수천억의 상장회사로 TV에 간혹 볼수 있어, 안타까운 그 친구의 마음이겠지만, 겉으로는 항상 즐거운 표정이다.
2003년 봄 벡스코에서 출판 기념회를 하고 나는 다시 생업으로 돌아왔지만, 그 해 여름 친구 S는 먼나라로 먼저 가버렸다. 작열하는 8월의
태양아래 우리 함께 친구의 관을 들고, 생과 사의 덪없는 현실을 보고 느끼며 한동안 우리는 멍멍히 지내고 있었다. 그러나 그 해 가을 친구
S의 동생이 다시 죽고, 얼마가지 않아 또 이사장이 쓰러졌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러나 심하지 않아, 병원에 들락거리면서 치료를 받고 있었다.
우리는 그러나 종종 전화로 통화하며, 이사장도 우리 회사에 불편한 몸을 이끌고 오기도 해, 함께 식사도 하고 또 가벼운 정리를 주고 받아
마음의 친구로 유지해왔던 것이다. S의 아들 딸 결혼식에도 항상 이사장과 의논했고, 이사장이 몸이 좀 나아 설악산 등반을 한다고 할 때
만류하기도 했다. 작년과 금년 우리 회사에 한 두번 방문하여 옛 이야기도 나누었다. 내가 특별히 한 것도 없는데 항상 정겹게 고마워했다.
최근 다시 병이 나빠져 좀 고생하더니 요즈음은 다소 회복된 것같기도 하다. 함께 점심을 먹고, 내 사무실에서 국선도 입단공을 소개해 함께
하기도 하고 이런 저런 옛 이야기를 나누다 불쑥 이번 일요일 뭐 할거냐고 묻는다. 아차 무슨 일이 있구나, 하고 애들 결혼하나 하고 념겨 물으니
웃는다. 청접장 달라고 하니, 미안해하며 안주머니에서 꺼내 준다.12시 반 광안리 식장이다. 당연히 가야지 하고 -하며 축하의 말을 전했다.
갈매기가 끼익끼익 울어되고, 바람에 모래가 날리는 추운 바닷가. 왔다가 돌아가는 파도와 포말되어 쓰러지는 하이얀 물결을 보며, 우리는 길카페
포장마차 안에서 소주잔을 들고,생활에 대한 걱정일랑 잠시 잊고 한껏 한량기질을 뽐내었던 것이다.. 누가 좋은 일이 있으면 좀 더 나은 식당에서
한 턱 쏘기도 하고, 물천리에서 볼치고 오다,울산에서 온 뒷 팀들을 꼬셔 함께 몇차까지 가기도 했던 시절의 삼빡한 기억도 있다.
열정이란 나이와 상관없는 것같다. 그 스타일 , 그 폼, 얼굴을 보면 다소 병색이 있지만, 말을 들어보면 항상 밝고 진취적이다. 이사장을 만나고
나면 항상 먼저 간 S를 생각하게 된다. 멋진 친구, 친구가 간 그 사잇길을 보면서 나는 매일 구서동 경부 고속도로로 출근하는 것이다. 어느날은 잊고
어느 날은 생각나고 그렇게 지나왔다. 벌써 8년이 되어가네.해백회의 멤버들도 이제 파도처럼 생활에 부딛치고 세월에 스며들어,점점 작아져 가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