山友

산같이 산과 같이 2009. 8. 20. 17:10

나의 아마추어 산행 역사를 보면 몇 사람의 산우가 있다. 시절에 따라 그렇게 만나 모였다, 헤여졌던 것이다.

 

아주 초기에 대륙산악회를 통하여 등산의 재미를 배울때 꼬치 친구인 덕이가 함께 였고, 덕은 그 후에도 대륙에 오래있었다.

정말 산에 대한 매력을 느낀 것은 고교시절 , 은사인 영어선생님과 함께 천황산 칠밭재에 함께 가 일박할 때, 머루당 다래당

따먹으며, 그 향기로운 자연속의 신선한  기억이 너무 오래 박혀있다. '4월의 노래'를 배운 것도 바로 그기였던 것이다.

 

고교를 졸업하고 안적암, 가사골에 있을 때는 지금은 가고 없는 권형, 그리고 이름이 생각나지 않는 동자승과 그리고 내원사

산지기와 함께 천성산을 누볐던 것이다. 생각하니 고교시절에 친구 무상과 함께 밤중에 밀양의 어느 산 중턱의 약수터를 헤멘

기억도 있다. 대학을 졸업하고, 서울 생활과 외국생활을 하다 부산에 자리 잡았을 때, 주말마다 혼자서 혹은 이런 저런 사람들과

천성산에 올랐던 것이다. 내원사 입구에서 올라가며 백숙을 시켜놓고 내려와 먹고 오곤했다.

 

사계절 시절엔 배대장, 파크의 박사장, 유토피아 김 부사장, 채, 희 등 학교와 사회친구들이 주축을 이루었다. 일본 가 있다, 지금은

서울에 있는 고교동기였던 철-의 코란드를 참 많이 이용하여 다녔다. 회백회 시절엔 산보다 골프를 주로 쳤지만, 그래도 베트남에

들어와 엉망으로 술에 찌들린 몸을 다잡기 위해, 일주일에 두 세번씩 달음산과 천성산을 올랐다. 쫑이도 달음산에 몇번 갔었다.

 

지금은 재활 치료를 받고있는 김사장은 정말 각별한 산우였다. 베트남부터의 인연으로 , 우리는 장산을 수없이 올랐고 신불산,

천성산, 영남 알프스를 설렵하였지만, 결국 그는 업무의 스트레스로 쓰러지고 말았다. 병원에서 내가 발목 골절로 일년 이상

쉬는 동안, 함께 자주 등산을 못해서 자기 몸이 그렇게 되었다고 나를 원망하기도 했다. 내 발목골절은  다른 팀들과 같이 가다

누가 가져온 양주를 마시고 방심하여 그렇게 된 것이다. 그땐 산행에 대해 자만심을 가지고 있던 때였다.

 

그래도 최근 5-6년동안의 산우로는 천성조우등 여러사람이 있지만, 함께 산을 타면 항상 호흡이 맞았던 S가 있다. 요즈음은

좀 비끌어져 보지 않고있다.  내가 거리를 두니 S도 성질이 나는지 아예 담을 쌓은 것같다.  또 S가 너무 커서(?) 바쁜 사회활동으로 

서로 시간을 맞출수가 없는 것이다. 멘토로 나를 생각하던 그 사람, 멋진 산꾼에게 아무런 나쁜 감정도 없다. 단지 거리를 두어야 되는

서로의 현실을 그대로 받아 드려야 한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S는 내게 있어 항상 최고의 산우로서 기억되어 남아 있을 것이다.

 

나는 종종 혼자서 산행을 한다.. 자랄 때부터 형제없이, 할머니와 함께 생활하였기에, 내 유아기와 소년기는 나혼자의 생각과 상상

속에 살다시피하여, 지금도 혼자 잇는것에 낮설지 않다. 혼자서 가는 산행은 여러가지 생각을 하며 여유를 가지고, 산과 자연 때론

어스럼한 밤엔 무덤속의 사람들과도 친구되어 걷는다. 외로워도 자유스럽다. 많은 사람들도 나처럼 그렇게 산을 즐긴다. 그러나 역시

친구들과, 혹은 마음맞는 사람들과의 어울려 다니는 산행도 즐겁다.. 산이 있는한, 무엇이던지, 누구이던지 친구가 될 수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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