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명동성당에서 만난 구중서 한국가톨릭문화연구원장이 자신이 쓴 김수환 추기경의 평전을 품에 안고 김 추기경을 회상했다. [김도훈 인턴기자] | |
지난달 27일 서울 명동성당에서 구 원장을 만났다. 그는 “제가 가톨릭출판사 편집주간일 때, 김 추기경께서 출판사 발행인을 맡았다 ”고 말했다. 지척에서 만났던 김 추기경은 어떤 분이었느냐고 물었더니 “온유하고, 예의도 알고, 의리도 있고, 정이 깊은 사람이었다. 그래서인지 이웃 종교에도 열려 계셨다”고 답했다.
◆『논어』를 읊었던 김수환 추기경=2001년 4월이었다. 구 원장은 허겁지겁 혜화동 주교관을 찾았다. 도올 김용옥 교수와 김수환 추기경의 TV대담을 말리기 위해서였다. 김 추기경의 위상과 품위에 손상이 갈까봐 걱정이 돼서였다. 김 추기경은 “이미 약속이 됐다”며 웃을 뿐이었다. 그러고는 “서가에서 찾아도 안 보인다. 『논어』를 한 권 구해달라”고 구 원장에게 부탁했다.
TV대담은 천주교 측의 우려와 달랐다. 구 원장은 “김 추기경은 공자가 말한 ‘하늘(天)’을 얘기했다. ‘유교의 천(天)이 푸른 창공 자체를 가리킨 것이 아니고, 우주의 본원적 주체로서 하느님을 의식한 것’이라고 의미를 짚었다”고 말했다. 이처럼 TV대담에서 김 추기경은 공자의 가르침을 담은 『논어』에 대한 깊은 이해와 울림을 드러냈다.
1986년 구중서 원장이 생전의 김수환 추기경을 만나 환담을 나누고 있다. | |
김 추기경은 “돌아보면 조상 제사는 미신이 아니라 부모 사후에도 계속 효를 실행하기 위한 보본추효(報本追孝)였다. 이를 인식한 천주교에선 1939년 조상 제사를 허용했다”고 설명했다. 구 원장은 “김 추기경의 친할아버지는 병인박해 때 순교했다. 이로 인해 추기경의 아버지는 유복자로 태어났다”고 말했다.
◆석굴암에서 넋을 잃은 김 추기경=구 원장은 “김 추기경이 경주 석굴암에서 넋을 잃고 불상을 봤던 얘기를 한 적이 있다”고 말했다. 그때 추기경은 1시간 넘게 우두커니 서서 석굴암 불상을 바라봤다고 한다. 이때 기록이 1976년 월간잡지『대화』에 실렸다. 당시 김 추기경은 “(석굴암 불상을 볼 때) 무엇인지에 깊이 빠져들어가는 것 같았다. 로마 바티칸에 가서 세계적인 미술품 성상들을 볼 때도 5분 이상 한 작품을 본 적이 없다”며 “결국 내 안에 불교적인 피도 흐르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우리는 이러한 요소를 거부할 수 없는 거다. 그러므로 다른 종교들과 대화를 나누고, 거기에서 고유하고 불멸하는 가치를 우리 자신의 것으로 소중하게 여겨야 한다”고 말했다. 구 원장은 “그건 종교혼합주의와 다르다. 김 추기경은 유교와 불교의 가치를 다 받아들이면서도 그리스도교가 지니는 소명과 현실적 여건에 대해 더 깊이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백성호 기자, 사진=김도훈 인턴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