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일 부처님오신날… 조계종 원로 고우 스님에게 길을 묻다
"황새 다리 끊어 뱁새에 붙인다고 공정해지나… 다름을 인정해야, 종교 이용한 성직자의 富 축적… 우리사회 막다른 곳 왔다는 의미"
하늘도, 산도 맑았다. 고우(古愚·74) 스님이 거처하는 경북 봉화군 봉성면 금봉암(金鳳庵). 요사채(스님의 거처)와 작은 법당이 엄마 품에 안긴 아기처럼 문수산 자락에서 편안하다. 고우 스님은 평생 선방에서 수행에 용맹정진해온 선승(禪僧)이다. 그런데 요즘은 세상이 스님을 그냥 내버려두질 않는다. 가르침을 구하는 사람들이 끊임없이 스님의 요사채 장지문을 두드린다. 최근 수년간은 서울 견지동 불교인재원을 오가며 육조단경(六祖壇經)과 금강경을 강의했다. 조계사 선림원 증명법사도 맡았다. 지난달 열린 '간화선과 위빠사나 국제연찬회'에는 한국 간화선을 대표해 참석, 미얀마의 파욱 스님과 대좌했다. 남방불교와의 대화에 고우 스님이 직접 나선 것 자체를 불교계는 일대 사건으로 받아들였다.
- ▲ 요사채 툇마루에 누웠던 개 금돌이가 고우 스님을 따라 법당 앞뜰로 나왔다. 스님은“불교에선 모든 존재가 다 불성(佛性)을 지녔다고 본다. 인간은 다른 생명을 이용하지 않으면 살 수 없기에 더욱 생명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와 겸손을 잃지 말아야 한다”고 했다. /봉화=남강호 기자 kangho@chosun.com
―간화선을 최고 수행법으로 여기는 조계종 분위기에서 왜 위빠사나 연찬회에 참석했습니까.
"나는 '포장한 보자기 색깔이 희고 붉어 서로 다르더라도 그 내용물은 같은 거 아이가' 이래 얘기합니다. 우열을 가리기보다 내 몸에 맞는 음식처럼 선택하면 되는 문제예요. 내가 낫다 니가 못하다 싸울 이유가 없지요. 모두가 본래 부처임을 깨닫기 위한 길인데."
―그 부처가 2555년 전 인도에 태어난 것이 지금 여기 우리에겐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개인의 생로병사, 사회계급, 나라 사이의 전쟁…. 부처님은 풀리지 않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출가하셨고, 깨달음을 얻으셨죠. 쾌락과 고(苦), 선과 악, 나와 너 같은 이원적 사고에서 벗어난 중도연기의 법(法)이지요. 그 법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 인간이 사는 곳 어디서나 유효합니다."
―스님은 깨달으셨습니까.
"나는 택도 없어요. 깨달은 사람은 부처님처럼 언행일치가 돼야 해요. 일상생활이 깨달은 대로 살아지지 않으면 깨달은 게 아니죠."
―모두가 깨달아서 부처로 사는 건 불가능할 것 같습니다.
"부처님도 모두가 다 깨달을 수는 없다고 하셨지요. 하지만 우리 존재의 원리가 본래 너와 내가 둘이 아니다, 이렇게 만들어져 있다는 걸 알면 남을 해코지하지 않게 돼요. 그러면 여러 사회 문제와 갈등도 크게 줄어들겠지요."
―깨달음으로 가는 길을 선(禪)이라고 합니다. 선을 수행하면 뭐가 좋습니까.
"선의 특색은 '지금 이 순간을 잘 사는 것'입니다. 순간순간을 행복하게 살아야 하는 것이죠. '날마다 좋은 날'이지요. 모든 생은 인과(因果)이고, 과거도 지금, 지금도 미래예요. 항상 현재의 삶을 사는 것이 선(禪)이지요."
―종교가 사회를 감싸지 못하고 사회가 종교를 걱정하는 시대가 돼버렸습니다.
"사찰도 교회도 개인 것이 아닙니다. 성직자가 종교를 이용해 욕망을 채우는 것은 범부(凡夫)보다 몇십배 더 나빠요. 종교가 이렇게까지 부패했다는 것은 우리 사회가 막다른 곳에 왔다는 의미일 수도 있어요. 한국사회에 과연 희망이 있느냐 우려하지 않을 수 없어요."
―그러면 종교가 어떻게 변해야 합니까.
"성직자들이 먼저 종교의 사명을 다시 인식해야 해요. 지나친 욕망, 그로 인한 갈등과 상처를 종교가 정화하고 치유할 수 있어야죠. 나는 종교는 가난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분쟁의 대상은 결국 세속적 부(富)에 있으니까요."
―한국사회의 일방통행과 소통 부재(不在)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습니다.
"다리 길이가 다르다고 황새 다리를 끊어서 뱁새 다리에 붙이는 것은 중도가 아니지요. 산에 여러 종류의 나무들이 다툼없이 서로 더불어 잘 자라듯이, 다양한 종류의 다양한 삶을 서로 인정해야 합니다. 종교갈등도 그래요. 어떤 특정 종교로 통일시키는 게 소통이 아니에요. 서로 존중하며 더불어 가는 것이 소통이지요."
―매일 타인과 부딪히고 상처받습니다. 어떻게 해야 합니까.
"부처님 당시에도 외도(外道)들이 끊임없이 찾아와 욕하고, 부처님 얼굴에 침까지 뱉었죠. 제자 아난 존자가 화가 나서 '도대체 어떻게 그렇게 참으시느냐'고 묻자, 부처님은 '아까는 내게 행패 부리는 그 사람을 연민했는데, 지금은 네게 더 연민을 느낀다'고 했죠. 나를 미워하는 사람을 안타깝게 여기고 연민하세요. 상대방을 미워하는 건 곧 자해하는 것이죠. 상대가 나에게 피해를 준 것도 억울한데 왜 나까지 스스로를 자해하겠어요."
도무지 빈틈이 보이지 않았다. 차담(茶談)을 나누던 방을 나와 법당 앞뜰에 섰다. 금빛 털을 가진 어른 키만한 개 금돌이가 뛰어와 스님의 발치에 얼굴을 비볐다. 솔 숲 사이로 청량한 바람이 불어왔다. 법당에서 흘러나온 향 냄새가 갈마들었다. 그때, 스님이 웃었다.
◆ 고우 스님은…
1937년 경북 성주에서 태어나 1961년 김천 청암사 수도암으로 출가했다. 관응 고봉 혼해 스님 등에게 경전을 배웠다. 1968년 문경 봉암사 선원을 재건해 조계종립 특별선원의 기틀을 닦았다. 봉암사 주지, 각화사 태백선원장, 전국선원수좌회 공동 대표를 역임하며 평생 참선수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