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15

안적암

산같이 산과 같이 2009. 11. 16. 12:00

 

 

전에 내가 있을때는 돌 계단이 앞쪽으로 없었고, 일주문도 없었다. 옆으로 된 길로 절마당으로 들어갔던 기억이다. 돌로 옹벽을 잘 정비하고, 앞의 정원과 텃밭을

나누어 길도 만들고 대문겸 일주문을 만든 것은 그 이후의 일이다.. 돌 계단을 올라서자 말자 왼편에 있던 감나무는 겨울이라 잎이 떨어지고 먼 곳을 댕겨찍어서

그런지 잘 보이지 않네. 절 마당에서 바라보는 천성공룡의 자태는 정말 높은 기상과 비범한 기운을 나타내고 있었다.  아침에 운무가 산 자락을 끼고 올라가는 것을

보면서 나는 산의 기운을 생각하기 시작했다. 산같이 산과같이 하기로 그때부터 마음을 먹었던 것이다. 그때는 저 산의 이름도 몰랐고 천성공룡이란 이름이 부쳐진 것도 한 10년정도 되였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40년전의 일이다. 서창포수가 호랑이를 봤는데 비켜가더라는 이야기를 했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해, 포기했던 대학입시 공부를 하기 위하여, 한번도 와 본적이

없는 천성산을 찾은 것은 아버님의 말씀이 연유가 되었던 것이다. 무슨 고등고시 공부를 하는 것도 아닌데, 혼자서 지내고 싶어 산으로 가서 공부하겠다는 것이

발단이 된 것이다.  이불을 갖고 양산행 버스를 타, 중방에서 내렸다.  그곳의 가게등에 문의하여 짐꾼을 사서  내원사 절앞 토굴까지 지게를 지고 함께 걸었던 것이다. 지금같이 아스팔트 길이 되어 있어도 한시간이 걸리는 거리이니, 절에서 산위의 토굴까지 올랐으니 두시간 정도 걸렷을 것이다.

 

어렵사리 절앞에서 산으로 올라 토굴에 도착하니, 스님이 출타중인지 문이 잠겨있고 안계신다.내원사가 빤히 저 밑으로 바라다 보이는 호젓한 곳이였다. 스님이 없으니 다른 방법이 없어, 짐을 진 아저씨의 권유로 다시 한시간 정도 걸어 내려와 다시 산길로 올라 성불암에 들러니 벌써 어두어지고 있어, 부탁하여 하룻밤을 자고 지금

매표서 입구의 익성암에 자리를 튼 것이였다. 성불암이 산중에 있어 더 좋았지만, 객방이 두개인데, 별채로 두개다 조끄만한 방이 붙어 있어 옆방에는 여자 보살

두분이 있어, 절에서도 남자가 있으니 불편한 것이니,하루 밤 재우고 익성암을 소개해준 것이다.

 

익성암은 별채에 손님들 재운는 방이 4개나 되어, 한 두분이 하숙을 하고 있었고, 또한 좀 편안하고 넓었다. 당시만 해도 절에도 돈이 없이 그렇게 공부하는 학생을

받곤 했던 것이다. 그러나 공부엔 취미가 없어, 도시락을 사달라고 하여, 내원사 본절의 총각 산지기와 친구가 되어, 온 산을 헤메고 다녔다. 어느날 산지기의

말에 백사가 날아 다니는 계곡이 있다는 말을 듣고, 함께 가보았다. 백사는 못 보았지만, 그것이 바로 상리천에서 집북재로 향하는 계곡임을 요즈음 알게 되었다.

당시에는 길로 거의 없었고 얼씬 거리는 사람들도 아예 없었다. 

 

백사의 계곡까지 갔다 바로위에 가사골이란 곳에 할아버지 혼자서 사신다고 해, 함께 올라가 보았더니, 절보다 더 좋은 것같은 느낌이 들었다. 앞에는 지금의 천성공룡이 우뚝 펼쳐서 있고 신비스런 기를 느끼게 했다. 바로 안적암에서 언덕을 넘으면 가사골인 것이다. 걸어서 2-3십분 거리다. 익성암 생활 몇개월이 지난 때였다.

얼마후 부산에 연락해 친구한명을 불러서, 라면 두박스와 이부자리를 챙겨서 가사골 이재현 할아버지 집으로 옮겼다. 그러나 식사문제로 두어달 후 할아버지의 권유로 안적암으로 옮겨서 8개월 가량 생활하다 집으로 돌아온 것이다. 그때 가사골(할아버지와 나), 큰 가사골(그기도 집한채로 할아버지의 처남이 부부와 딸과 함께

살고 계셨다),안적암 그리고 조개암.. 이 모든 거처의 사람들이 한 집안 사람들처럼 자주 인사를 하고 왕래가 있었던 것이다.

 

안적암 생활은 즐거웠다. 마당도 넓고 내가 있던 방은 대웅전과 붙은 옆방인데 무슨 물건들이 좀 들어있었지만, 나이든 보살, 스님 그리고 하숙하는 학생 한명과

국민학교 다니는 보살의 조카 한 사람과 친척인지 절에서 일하는 체격이 좋은 내 또래의 남자 머슴이 한사람있엇다. 그 머슴의 이름은 생각나지 않지만 성격도 좋고 살결도 희고,군살이 없이 허리가 갸름하고 힘이 좋았던 기억이 있다. 장작을 패던 그의 모습이 생각힌다.. 노 스님(비구니)은 몸이 편찮아서 거동이 불편한 상태였는데, 몇 십년후에 내원사에서 보살의 조카를 만나서 이야기를 한적이 있다.-- 머리를 박박깍고 책보타리를 어깨에서 허리로 동여베고 서창 국민학교다니던 그 소녀가 과년한 두딸의 어머니로 지금 내원사앞에서 치킨집을 하고 있었다. 삐삐 마른 키에 그 모습과 윤곽은 어릴때 그대로 였다. 10년전 쯤인가 내원사 입구에서 만났다.

 

"아저씨가 반찬 타령을 하고, 밥먹으러 데리러 가면 늦게 오고 해 굉장히 미워했다" 고 기억했다. 왜 그랬을까? 하고 웃었다. 이름은 잊었지만 내 또래의 머슴과

내원사 산지기가 들러는 날이면, 장작을 패지 않고, 함께 뒤의 정족산이나, 혹은 천성공룡의 바위밑까지 오르기도 하였다. 천성공룡쪽은 길이 없어 무척 힘들었던

기억이 있다. 바위 밑에는 고산식물의 갈대같은 나무들이 군식하고 있었다. 좀 어시시했던 것이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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