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자유로운 영혼

산같이 산과 같이 2017. 2. 1. 15:23

 

경비실에서 택배가 왔다고 조그만한 봉지를 들고 왔다. 거래처인 모 글로벌 사의 서울 사무소의 S부장이 보냈다. 10여년 있어도 별로 나와는 접촉이 없었는데, 최근 2-3년 그 쪽 싱가폴에 있는 아시아 매니저가 몇 번 방문하고, 또 경쟁이 심해지다보니 나에게도 영업차원에서 보낸 것이다. 하필 검형석 교수의 책일까? 나이가 많다보니 어떻게 사는 것이 좋을까?하는 수많은 덕담속에 장수하는 철학교수라고 그런 것같다. 김 교수와 나의 생활은 발판이 다르고, 몸을 험하게 사용한 것도 다르니, 곱게 생활하신 그분과는 치열한 경쟁속에 이 나라 저 나라,이곳 저곳에서 생활한우리와 다르다..


세월의 흐름에 안주해야 될 때가 되었지만, 안주는 나의 스타일이 아니라고 외치고 싶었다. 은퇴하면 여행도 하고 자유로운 영혼을 가지고 명대로 사는 것이라는 생각이다. 말년의 인생에 있어서는 집사람처럼 달관한 사람이 없다. 나는 낙천적이고,언제나 자기 스타일을 고집하는 집사람의 관점을 존중한다. 명대로 사는 것이니 죽음에 대해서는 걱정하지 않는다고 한다. 집사람 가족들은 거의 60대초에 세상을 떠났는데 자기는 보너스로 살고 있다고 한다. 그래도 체력이 딸리는지,전혀 홍삼은 맞지 않다고 안 먹더니 요새는 홍삼, 공진단등 잘도 먹는다. 테니스 레슨 받는데, 또는 동생들과 경기하는데 딸려서 안된다고 한다.


대충 책의 내용을 보니, 내 탓이요를 강조하고 사랑을 강조하였다. 좋은 말을 많이 적어 놓으셨네. 전번에 TV에 나와 무슨 말씀을 했는데, 지금은 기억나지 않지만 편안한 분이였다. 마치 성자같은 느낌이였다. 대충보고 부사장에게 보라고 주었다. 이런 것을 가지고 혼자 업체와 친한 것같은 태도는 좋지 않다. 자재등 돈과 관련된 부분은 회장님 라인에서 많이 개입하고 있어, 오히려 나의 행동이 편하고 자유스럽다.


그러니까 40대 초반에 테니스에 한창 재미를 부치고 배울 때, 남산동 범어사 위의 금정산 단풍이 붉게 타오르는 것을 보면서 국제 테니스 클럽에서 테니스를 쳤다. 그 때 그 클럽에 있던 회원들이 지금도 연락이 오곤 하는데, 당시 그 곳 테니스장의 코치였던 Y가 최근 찾아와 취직을 부탁해 총무에 이야기 해 입사토록 했는데, 총무이사가 전화해 출근하라고 하니, 1월말가지는 고용보험 타니 2월부터 근무하겠다고 해, 어제부터 출근하고 잇다. 집사람에게 아마 1년 정도 하고 또 6개월 고용보험 탈 지 모르겠다고 이야기하니, '자유로운 영혼' 이니 어찌 겠느냐고 웃는다. 평소 해운대 테니스 치는 여자들을 자유로운 영혼들이라고 농담을 했더니 그런다, 사실 부부 클럽의 여성 회원들 중엔 일주일에 5-6일 이 클럽 저 클럽에 가입해 치고 있다.  테니스가 어느 수준에 들어가면 마약같이 끊기 어렵다. 이해하고 있어 한창 일하는 사람들에게는 권하고 싶지 않다. 나도양산 텃밭에 베트남에서 본 작은 레슨 장을 세워서 한번 씩 가서 혼자 운동하고 싶어 궁리해본 적이 있다. 우리처럼 한 코트를 빌려서 레슨을 시키는 것이 아닌 작은 벽면을 만들어 놓고, 코치와 둘이서 벽면을 보고 벽면에서 부딫쳐나오는 볼을 서로 치고 하는 레슨인데 스콰시 같은 방법인데 공간이 많이 save되고 효과적..당시 그것을 보고 베트남 사람들의 머리에 놀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