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차
동해남부선
(천 향미)
엄마가 그랬던 것처럼 나 역방향 창가에 앉아
내 유년에 개가한 엄마의 철길 위로
엄마,하고 나직히 불러본다.
입김어린 차장에 언니 이름 먼저 쓰고
차장이 흐려지기를 기다렸다 다시
'미야' 작은 글씨로 내 이름을 적었을
그리고는 이내 뿌옇게 지워졌을,
왜 과거는 멀미가 날까 역방향 좌석처럼
엄마가 떠나던 그날 기차는 지축을 흔들며
미포 구덕포를 돌아 북으로 가고
서러움에 울던 레일의 평행선은
다음 기차가 지나간 후에라야
지워졌을 것인데- 늘 안개 속을 달려야만 했던 기차,
등 돌리고 앉은 나처럼
등 뒤의 풍경이 그리워 애틋하였을
애틋하여 서러웠을 시간을 만나러 간다
풀어내는 기적소리에
온기를 느끼며 쉬고 싶은 간이역
다음 역은 '월내역'이다
애써 '원래' 라고 발음하며 처음 그랬던 것처럼
내 잃어버렸던 여정의 출발점을 만나면
그때 기적보다 크게 울 수 있을까
동해남부선 열차는 파도가 바뀌 다
울음 같은 파도 잠잠해지면
나 거꾸로 앉았던 자리 앞으로 앉을 것이다.
아파트 앞을 지나가던 동해남부선 열차가 어제부터 다니지 않는다. 수비삼거리에서 새로 만든 터날을 통해 역시 새역사인 송정역으로 가는 것이다. 동안 기차소음에
신경을 써던 집사람이 언제 그런 불편이 있었는지 생각이 가물하단다. 현재에 적응하는 것인 인간이니 더구나 과거보다 나은 현재인 경우, 과거는 항상 쉽게 잊게된다.
윤동주 문학사상 선양회 사무국장인 천시인의 시, 동해남부선은 가슴에 와닺는 뭉클한 무엇이 있다. 맑은 눈빛이 반짝반짝하는 시인의 모습을 보면 그런 아픔속에서도 긍정적인 생활을 유지하며 時라는 적(?)과도 잘 동침하여 오신것같아 놀라게 한다. 이제는 그 적을 물리치고 더 높은 고지를 향해 정진하고 계시겠지..
집사람이 친구에게 "기차가 없어진다"고 하니 "낭만이 사라지네" 하더란다. 지나간 것은 다 아름답게 바라볼 수있는 마음의 여유가 있다면 좋다. 동해남부선-하면 천시인의 時가 생각나고 내 유년의 기억도 스친다. 범일동 시장에서 일을 보고 저녁무렵 시장바구니를 머리에 이고 경부선 열차길로 올라오시던 할머니를 기다리던 나의 모습도.. 할머니와 둘이 살던 집은 기차길이 지나가는 언덕위에 있었다. 작은 대문을 들어가면 수양버들과 큰 무화가 나무가 있고, 나무밑에는 깊은 샘이 있고, 나무대문을 들어가면 마당에는 나팔꽃, 채송화, 복숭아등을 할머니가 심어놓았다. 학교를 파하고 집에 오면 창문닫힌 마루와 사람이 없어 쓸쓸했던 집안의 분위기가 아직도 외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