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15

산같이 산과 같이 2013. 8. 15. 04:37

모처럼 꿈에서 아버님과 대화를 나누고 마음의 앙금을 풀었다. 무엇인가 마음이 맞지않아 다투고 나왔다가 다시 아버님을

만나기 위해 집을 찾아갔다. 막걸리 한 주전자를 들고 들어가 여러사람들과 방안에 계시던 아버님을 뵙자고 하니 나와서

마루에 같이 앉아, 이 땅을 오래 가지고 있다가 장기적인 계획을 세울 것이라고 한다.꿈에서 보기에도 나무가 있고  시원한

느낌을 주며 주위가 번성할 것같은 좋은 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도 동의를 했고, 내가 공부를 하지않아 작은 집을 그대로 방치했다고 하길래 나중에 두고보세요, 대학에 들어갈테니-그땐

돈이 좀 들것이라고 하니, 돈은 걱정하지 말라고 하셨다. 아버님이 비행기를 타고 어디 가신다고 하길래 국제선은 2시간전에

공항에 도착하는 것이 안전하니 나의 말을 듣고 일찍 출발하시라고 하고 인사를 하고 내려왔다. 아버님도 반가워하며 서서

배웅해주셨다. 꿈을 깨니 4시다.

 

아버님의 임종을 나 혼자 지켜본 그 때도 내가 " 아버님, 아버님 세대는 국가적 어려운 시기였지만 아버님은 잘 사셔서 자식들도

잘 지내고 저 역시 불효가 많았지만 아버님을 사랑하고 존경하고 있으니 잘못된 것은 용서하시고 편히 가십시요" 하고 귀에 대고

큰 소리로 말씀을 드렸는데, 숨을 호흡기에 의존하던 어버님의 호흡이 갑짜기 거칠어 지더니 숨이 멎었던 것이다.

 

계모와 같이 살고 .나는 할머니와 같이 살았던 우리 부자간엔 다툼이 많았다. 젊은 혈기에 철없었던 나는 아버님께 반항도 많이

하고 결혼하고 나서도 사이가 좋지않았다. 집사람과 계모와의 사이도 좋지않아 어설픈 남보다 더 경계하고 불신하는 사이였다.

아버님이 가신 후 장남인 나는 상속에 대한 언급을 하지도, 받지도 않고 계모마음대로 하도록 두었다. 얼마를 받고 관계를 유지하는 

사이가 되기 싫었던 것이고, 어머니도 아예 알아서 아버님 가시기 얼마전에 강남의 집을 팔고 대비를 하신 것이다.

 

꿈을 깨니 기분이 좋은 것같았다.. 학창시절에 반항하고 해병대와 2차 대학을 나온 나는 마지막에 집중력을 발휘하여 삼성과

수출입은행 그리고 종합무역회사인 K 상사의 입사 시험에 합격하였던 것이다. 아버님이 사사던 서울의 집을 찾아가니, 공부 열심히

한 것같구나- 하신말이 생각났다.  산다는 것이 철이 없을때는 한가지만 생각하고 화를 내고 앙금을 갖게 되지만 먼 인생과

큰 생활을 생각하면 얼마나 부족한지 알게된다. 그때는 몰랐던 것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