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들
밀양에서 같이 고교를 졸업하고 세월이 좀 흐른뒤에 다시 만나 부산에서 30년 이상 우정을 나누는 3 명의 동창들이 있다.
요즈음은 서로 바빠 전화로 안부를 묻기도 하지만 일년에 7-8번 꼭 뭉친다. 특히 명절날은 만나서 옛 정리를 나눈다.
어제는 넷이 6시에 만나 2차까지 가 자정께 들어왔다. 모처럼 망가진 모습으로 마음 껏 마시고 놀았던 것이다.
A는 국세청에 근무하다 일찍 퇴직하여 직장없이 한 세월을 한량으로 보낸 친구인데 유산으로 받은 몇 만평의 땅을 야금
야금 팔고 집사람이 가계를 해 생활에는 지장이 없다. 두 아들에 모든 것을 털어 넣어 대원외고 등을 나와 지금은 큰 신문사
국회출입 기자로, 작은 아들은 공기업에 근무해 그것을 보람으로 삼고 산과 절에 헤매고 있다.
B는 나와 해병 동기다. 유명한 사진 작가다. 그러나 보증을 잘못 서 한동안 고생을 많이 했지만, 지금은 아들 딸 둘다 결혼을
해 생활이 좀 안정적으로 돌아 섰지만 아직 사진관을 계속 하고 있다. 진짜 한량인 친구다. 춤도 잘 추고 예술적인 재능을 타고 나
노는 데는 일가견이 있다. 밀양 모 면장의 아들로 공부엔 뜻이 없고 고교 때부터 악대부로 한량의 길로 들어선 것이다.
C는 건축자재 회사의 영업부에서 한 평생을 일하다가 지금은 처남과 작은 건축회사를 하면서 정부 공사의 하청을 받는데
섭외부분에 책임을 지고 일할 정도로 발이 넓고 대단하다.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한번 본 사람에 대해서는 잊어버리지 않아
뭔가 생각이 나지 않을 때 이 친구에게 묻는다. 현직에서 갑짜기 병사한 모 국회의원의 처남으로 그 사무장 역할을 하기도 했다.
내가 미국생활을 접고 들어와 부산의 H그룹 수출과장으로 다시 시작할 때부터 우리들의 만남은 시작되고 젊을 때는 한달에
수차례 뭉치기도 했다. 이 친구들과 살아온 이야기를 언제 한번 글을 적을려고 생각하고 있다. 명분과 어려움의 세대에서,
자본과 실질적인 세대, 경제의 비약과 함께 변천한 사회에 어떻게 우리들이 적응해 살아왔는 가를 말이다.
어제는 모다 술이 되어 "솔직히 XX가 없었다면 우리 모임이 이렇게 오래 꾸준히 유지 되었겠냐?" 하면서 나를 띄어주기도 했다.
비교적 큰 회사의 수출부와, 외국인 회사의 지사장을 했던 나도 술마시고 친구들과 어울리는 것을 좋아 해 항상 먼저 깃빨을 든
것을 비유하는 이야기다. 가진 것은 없어도 소비성향은 높아, 한 때는 은행에 대출을 받아서 술 값을 갚기도 했다.
할 이야기가 많이 있다.. 우리들의 세대가 살아온 그리고 내 친구들과 내가 살아오며 얽키고 설킨 것들을 언젠가 한번 시간을 가져
인생이 무엇인지 그리고 그 때의 열정과 사랑, 우정을 글로써 풀어 나갈 생각이다.. 술 땜에 몸이 더워 밤에 몇번 일어났다. 이제사
술이 좀 깨는 것같네. 금쪽같은 일요일을 이리 앉어 있으면 안되지..빨리 가서 목욕하고 머리부터 깍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