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모
1) 30일 일요일 근무 후 회사 송년회를 저녁에 하고 나면 금년의 일정이 끝난다. 31일 하루 휴식을 거치면 새해다
무엇을 하고, 어떻게 걸어왔는지 한 해가 길었는데, 생각하면 아무 것도 없다. 기억나는 것은 미련하게 감정을
극복하지 못한 것만 생각나네.. 작은 동물같은 모습이네. 나이가 들수록 작은 동물의 마음같이 단순하고 싶다.
일본 고모댁 방문 기억이 난다. 부잣집인데 사촌 형님이 헤여진 소파를 무슨 골동품처럼 그대로 사용하고 있었다.
아마 고모부의 흔적을 그대로 두고 싶어하는지도 모른다. 나름 대로의 봉사활동과 작은 생활에 바쁘게 만족하는
형수님의 모습이 갑짜기 생각이 나네.. 그렇다 일상의 의미에 의지하며 소박하게 살어가는 아름다운 모습이였다.
2)다이어리를 보니 세모까지 몇 일정이 잘 짜여 있네. 25일은 동래CC에서 OB팀 송년 모임이 있다. 벌써 30년 3병
준비되었다고 회원들간에 메일이 뜨고 있다. 이번에는 좀 마시자고 하네, 너무 위축되어 있으니 극복하자는 뜻이다.
26일은 아파트 관리위원장을 넘겨주는 임시총회가 있다. 시간이 있는 사람들이 맡어 꼼꼼히 챙겨야 될 일들이 많다.
27일은 무정했지만 H시인과 저녁을 하기로 하였다. 일년이 다 되어가는 것같다, 시 문단의 유명한 분. 항상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분이다. 봉사 활동을 많이 하시는 데, 시인을 만나기 전에 그 분의 시를 보고 좋아했다. 우연히 모 모임에서 만나
간혹 안부를 전하는 사이다. 최근엔 무정했다고 사과를 구하니, 유정한 줄 안다고 친구사이에 무슨 그런 소릴? 하시네.
28일은 미우나 고우나 고교 동기 4인방의 만남이다. 생각과 생활의 스타일은 달라도 옛 추억으로 만나고 추억을 안주로
씹고 또 십고 헤여진다. 돌아서 생각하면 씁슬한 만남이지만 명절이나 세모가 닥아오면 추억은 다시 살아나, 소주 한잔의
옛 기억이 그리워진다. 친구들의 얼굴에서 내 모습을 발견하며 세월의 긴 강줄기를 오르락 내리락 하는 것이다.
30일은 출근했다, 경주의 결혼식에 갔다 와, 저녁엔 회사 송년회에 참석한다. 밀양역을 떠날 때 다 바람속에 사라진 것
같았던 사춘기의 기억들, 이제는 청춘의 아픔을 멀리서 관망하는 기분이지만, 역시 마음은 아프다. 젊은 나이에 먼저 세상을
하직한 가족같고 형님같았던 친구-무상, 무상 동생의 아들 결혼식을 참석하니 어찌 옛일이 생각나지 않을까?.
"형님이 정신이 혼미하여 자리에서 헤맬 때, 형님의 머리맡에는 --형님에게 보내는 편지가 수북하였습니다. 서울의
주소를 몰라서 보내지 않았던 것을 , 형님이 돌아가시자 다른 유품들과 다 불 태워버렸습니다" 라는 편지를 받았던
당시는 전화도 귀하고 오직 편지에만 의존했던 무정한 시기였던 것이다. 아 무정-하고 밀양역 플랫폼에서 울고 말았다.
(나의 해병 앨범에 친구 무상에 대한 여러 글이 있다. 내 마음을 절실하게 적은 글이 있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