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금회
생활의 한 고개를 넘기고 또 아픔을 딛고 다시 시작한 친구들과 나, 그리고 부산에 근거를 둔
옛 친구들, 업계의 몇 사람이 뭉치고 어울려 모인 곳이 범천동 쇼핑센터의 사무실이다. 우리 업계의
역사같은 과거와 변화를 보는 것같다. 어제는 사금회 송년 모임이라 술도 많이 하고 늦게까지 노래도
부르고 마지막엔 그래도 아쉬워 톰엔 톰즈에서 커피를 마시며 헤여졌다. 자다가 몸이 더워 일어났다.
L군이 말했다. 갖고 싶고 원했던 것들을 가지지 않고도, 마음편히 잘 살고 있다고. 명문 K고와 서울대
정외과를 나온 그가 회사를 나와 사업을 해 고교 동창 몇사람까지 부도의 늪에 빠트리고 부산에 내려
왔을 때, 내 고교 동기며 해병동기였던 K가 관리직으로 있던 범천 쇼핑센테에 사무실을 소개해 다시 재기의
발판을 밟도록 한 것인데, 잘 일어서 업이 번성하자 공장을 차리고 다시 또 더 큰 것에 손을 대다 망해
어두운 길을 10여년 걷다, 요즈음은 직장생활을 하며 생활의 안정을 찾았던 것이다.
범천 쇼핑센터에 뭉쳐 고스톱을 치고, 술을 먹고 여기 저기 업계친구들을 불러서 사업도 소개하고 시작
했을 때, 나도 당시 미국에서 들어와 H그룹의 수출과장으로 있던 1985년 경 이였으니 벌써 25년이 흘렀다.
내가 부산에서 자리를 잡자, 서강대 나와 뉴욕지사에 같이 근무하다 그만둔 Y도 H 그룹의 과장으로 소개
하여 함께 어울리고, 3년뒤 내가 H그룹에서 나와 미국회사의 한국 사무소장을 할 때 범천 쇼핑센터엔 당시
우리 회사의 거래처 중의 하나인 D사의 무역사무실과 샘플실을 그곳에 있었다. 지금 사금회의 총무를 맡고
있는 S가 무역부장으로 당시 우리들과 어울렸다.
Y가 H그룹에 있을 때 모 은행장 딸과 결혼했을 때 우리 모두가 축하를 했는데, 그 뒤 이혼을 하고 회사를
그만둔 이래 몇 년간은 함께 모였는데, 이제 아무도 소식을 모른다. 또 부산고, 모 대학을 나온 D는 아주 성실히
살던 친구인데, 어제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쇼크였다. 참 좋은 친구였는데, 우리 업계를 떠나 다른 직종에 있던
어느날 중앙시장에서 본 것이 마지막이였다. S와 같은 무역부 차장이였던 C는 현대 중공업의 하청 업체를 하다
지금은 연락이 안되지만 잘 있을 것이라고 들 한다. 나와 청사포의 가족 모임은 아직도 기억이 새롭다.
어제 밤엔 연락이 안되고 혹은 고인이 된 5-6명의 이야기로 더 술 분위기가 돋아 모였던 친구들이 양주와 맥주등
술을 계속하였던 것이다.당시 그렇게 어울리기도 어려운데, 모두가 친구들의 개인적 생활을 이해하고
또는 업이 서로 엉키어 돕기도 하고, 함께 끌었던 것이다. 돌아가면서 한마디씩 덕담을 하는데, 쇼핑센터
관리부장으로 있던 K왈, 자기는 여러 모임이 많아도 이 모임만은 꼭 참석한다고 한다. 학벌도 부족하고
업이 다르지만, 항상 생동감과 아이디어가 넘치는 이 모임은 옛날 부터 너무 재미있어 즐겁다고 감사를
표했는데, 오랫만에 듣는 겸손하고 진솔한 덕담이였다.
사실 K는 재치가 뛰어난 한량이다. 부친이 밀양에서 면장과 양조장을 하던 집안인데 공부는 이미 취미가 없어
술을 좋아해 건설업하는 친구와 어울려 마시고 다니다가 보증을 써 그 회사가 부도가 나는 바람에 아직도
고생을 하고 있지만, 항상 밝은 모습으로 당뇨약을 먹으면서도 술을 끊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해병출신답게
근면히 업을 잘 유지하고 본인의 특기인 예술 분야에도 두각을 나타내고 있고 취미로 부는 섹스폰도 수준급이다.
L이 남미에 근무할때 고명 딸이 미국에서 공부해 지금은 홍콩 샹하이 뱅크 본사에 근무하고 있어 홍콩에 살고 있다
홍콩 사람과 결혼을 명년에 한다고 해, 관광삼아 사금회서 부부 동반 참석하기로 했다. 부인이 서울의 유명했던
극장의 딸이였는데, 처갓집 재산도 많이 써고, 부인을 고생많이 시켰다. 부도가 나 헤매고 다닐 때, S가 부산의 재송동에
셋방을 구해주고 학습지 교사를 하는 둥 10여년 어려운 시기를 겪었던 것이다. 고대를 나와 모 종합상사의 나와
입사동기였는데,L을 만나 고생을 하고 자존심이 상했는지, 어느 날 L사무실에서 만났는데 인사를 피하고 나가 버렸다.
명년에 홍콩에 갈때는 웃고 만날 수있을 것이다.이제는 L도 자리를 잡아 해운대에 집도 사고 잘 살고 있어 보기도 좋으니
만나면 옛날 이야기도 할 것이다. 세월과 생활의 굴곡에서 벋어나 지금의 성숙한 자리에서 보면 어려웠던 시절이 아득한
꿈길 같기도 한 것이다.. 모두가 건강을 챙기자하며 밤 11시경 헤여졌다. 만났다 헤지지고 하는 것이 사람의 관계지만
우리는 헤여지지 않고 세월에 묻혀 나간 몇 몇 친구들이 있을 뿐 , 우정에 상처받은 적은 없었다. 작은 아픔은 있었겠지만
그래도 다 감싸주고 지금도 만나면 항상 웃으며 지나가는 그런 친구들이다. 부디 세월을 넘어 건강히 오래 만나길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