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15

의미

산같이 산과 같이 2011. 11. 12. 17:56

 

양산과 밀양에 토지를 많이 샀다가 조봉암의 토지 개혁으로 대부분 소작인에 넘기고, 그래도 

 2-3십 마지기 땅과 소가 있어, 사업에 실패한 후 아버님이 거의 7-8년을 밀양에 들어가 사셨던

것이다. 지금도 기억하는 것은 어릴 때 할머니와 함께 배를 타고 강을 건너 우리 논으로 가던 일과

시퍼렀던 강물과 푸른 참외를 많이 가져와 먹던 기억. 부산의 집에 초겨울이면 양산과 밀양에서 

누군가가 쌀을 가져다 주면서 할머님과 이야기를 나구곤 했던 것들,

 

소희 지주집 손자라고 해도 땅 한 평 받은 것이 없지만, 양산 땅땜에 아버님과 여러번 소송문제로

함께 간 적이 있고, 지난번 서울의 엄마가 왔을 때도 "땅을 찿아야 하는데" 하시는 것을,수 십년 된

지금와서 다시 송사를 별려도 희망이 없으니 포기하세요- 하였다. 밀양의 고교시절, 15 육군 병원

옆의 논 몇 마지기는 기억하고 있다. 누렇게 나락이 익어 있던 길을 자전거 타고 가면서 저것이

우리 논이라 자랑삼아 친구에게 말했던 일들.

 

천주교 묘지의 하늘 공원 공사하면서 나온 돌로 축대를 쌓았다는 조합장의 말에 더 친근감이 들어

용연에 텃밭을 선뜻 구했지만, 사실 어떻게 할까 구체적 계획도 없고 생각만 있을 뿐이다.

조합장 동생부부가 오늘 배추와 무우를 파 가라고 해서, 집사람에게 말하니 갈 사람이 없다고 한다.

다들 나이가 들어 김치로 담아 주기를 원하는 소리들이다. 오늘은 퇴근 후 내 혼자서라도 가서 채소

몇 포대 담아올 생각이다.농사일은 처음이지만, 옛날 일들을 생각하니 의미가 새삼스럽다

 

 

 

퇴근 후 넘어가 혼자서 한이랑 95개를 파서 잎을 짜르고 마대에 10개씩 넣어와 근처에 사는 집사람 친구들과, 이모에게 무시김치 만들도록 주고 왔다. 배추도 알이 많아 베였지만, 가지고 올 마대가 없어 그냥 왔다. 무우가 제법 커 무거웠다. 오는 길에 차가 많이 막혀 친구들에게 들리지 못하고 바로 집에 와 사진만 올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