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산
해운대에 살다보면 장산의 푸근함에 자주 안기게 된다. 주말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붐비는 곳이지만
그래도 산 안에 들어서면 마음이 편해지고 맑은 공기를 마시고, 얼룩달룩한 등산객의 모습을 보는 것도 재미다.
U 형님과 나는 간혹 삼포길을 걷기도 하지만, 요즈음은 중동역 파리바겟트에서 만나 아메리카노 커피 한 잔 마시고
장산입구까지 찻 길로 걷다가 입구에서 개울건너 산길로 체육공원까지 가 운동을 하고 넓은 길로 내려온다. 오늘은
날씨가 추워 체육공원을 패스해 바로 약수터까지 올랐다. 산을 오를 때는 안에 땀이 베이지만 곧 차거운 느낌을 받게
된다. 왕복 걷는 시간만 2시간 20분 정도 걸린다. 오후의 산책으로는 약하지 않다.
형님이 매우 추워셨는지, 오다가 빨리 순두부 집에 들어 가자고 하네. 손이 얼어 걷기가 불편했던 것 같다.
순두부와 생탁 한병으로 몸을 녹이고 이런 저런 세상살이 이야기 하다가 들어왔다. Elmo형님이 2월에 온다고
말씀드리니, 블로그에서 보았단다. 세사람이 자주 어울리게 되었네. 그 연세에 일을 하시니 난 사람들이다.
장산은 지금 재활치료를 받고있는 친구인 C사의 김사장과 많이 올랐던 것인데, " 언제가 회복하여 장산을 올라
갈 것" 이라고 말한다고- 부인이 우리 집사람에게 전했다.. 둘은 고교 동기라 한 달에 한번씩 만난다. 일년에 한 두번
친구집을 찾지만, 내가 자주가면 마음이 상할까봐 안부만 전한다. 그 애살 많고 열정적이며 자기 관리가 철저하던
사람이 얼마나 마음이 아플까.. 무리한 것이 역시 문제인가 보다.
장산을 생각하면 나에게 큰 교훈을 주었다.2006년 12월 4일 장산에서 기장 수령산으로 넘어가다 내리막 길에서
언 줄모르고 짚었다 미끄러져 발목 뼈 3개를 골절한 것이다. 그 때 암벽 훈련을 받기도 하며 산에 대한 자신이 너무
앞서 있었던 것인데, 그 날 같이 간 팀들과 발렌타인 양주를 중간에 마시고 거나하게 걷다 넘어진 것이다.
넘어진 前月인 11월 초에 김사장과 간월산장에서 신불공룡으로 신불산을 한시간 40분에 미친듯이 오르기다 했다.
내가 다음달인 12월 4일 넘어지고 , 김사장은 다음해인 2007년 4월 중국 출장갔다 와 뇌출혈로 넘어진 것이다. 평소
하프 마라톤을 뛰고 산을 좋아하던 그 였지만, 스트레스인 것같았다. 수술 후 병원을 갔더니 , 내가 골절하여 산을 못가
자기도 산을 자주 못탄 것도 원인이라며 내가 원망스럽다고 하였다. 우리는 그렇게 자만속에 당한 것이다. 김사장은
재활 치료를 받고 있지만,완전회복은 어렵단다. 나역시 골절의 후유증을 죽을 때가지 갖고 가야 될 상황이다.
그러나 친구인 김사장도 좌절하지 않고 나역시 그대로 있지는 않았다. 김사장도 열심히 노력하고 있으며, 나는 다음 해 인
2007년 10월에 붕대롤 감고 비오는 날 천성공룡을 혼자서 오르고, 일주일 후 회사 임원들과 한번 더 천성공룡을 올랐으니
끈질긴 집착이였다. 갔다오면 며칠씩 다리를 절고 그것땜에 또 오른쪽 디스크가 문제가 되어 허리를 절기도 하지만 그 후
다리를 보강하기 위해, 5-6년 중단했던 테니스를 다시 시작하고 산도 여기 저기 ,어려운 에베로 릿지도 3번이나 갔다.
생명이 끈질기듯이 살려고 노력하는 마음도 끈질기고 좋아하는 것을 계속하고 싶은 집착도 강했다. 그 뒤 친구와 같이
장산에서 기장 수월산 코스를 한번 같이 산행하며, 넘어진 곳을 확인하고 반성하기도 했다. 어머님의 품같이 포근하고
아늑한 장산이지만, 흩으러진 자세의 아이에게 엄하고 냉정한 어머니이기도 하다. 산이란 바로 그런 곳이다. 한없이 넓고
깊은 도량이지만, 잘못에는 엄격하며, 그 엄격함도 아주 치명적인 것이기도 하다.
장산을 볼 때마다 내게 주는 교훈의 소리가 마음 깊이 울리고 있다. 그렇다 2003년 내가 쓴 사이공 사이공 책 말미에 이런
말이 들어있다.." 산같이, 산과 같이" 하며 마음의 병을 얻은 것이다." 진정 산과 같은 사람, 산과 함께 할 수있는 사람-
그것은 아직도 도달하지 못한 싱싱한 나의 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