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의 고향
이리 저리 딍굴며 일요일을 보내다 초 저녁에 TV를 켜니, 열린음악회의 밀양편이 방송되고 있다.
비가 오고 있는데, 영남루앞 남천강 건너편 둑밑의 광장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질서 정연히 음악회
분위기에 젖어 있다. 원래 문화적인 끼가 많은 밀양사람들이며, 자연적인 환경이 좋은 곳이라 산과 강
을 가깝게 접하고 있어, 반촌의 영악한 점도 있지만 원래 순수하다.
뒤에 비치는 영남루를 보니 여러가지 생각이 든다. 음악회의 마지막 부분인가 본데, 가수 윤수일이
나와 '제2의 고향', 그리고 '터미날'을 부르고 있었다. 밀양은 나의 사춘기 시절을 보낸 제 2의 고향이며
그리고 시내 안에 있던 시외버스 종점은 부산을 왔다갔다 하던 여러가지의 추억들과 감정이 있다.
작가 이문열이 밀양중을 중퇴하고, 전도연이 출연한 영화 밀양이 힛트를 치기도 했다. 영남루밑의 오솔길에는
당시에는 신기하게 돌에 자연 석화가 많이 있었는데, 지금은 거의 없다고 한다. 길도 바뀌고 많이 변해있다.
집에서 사준 도시락을 가지고 학교는 가지않고, 겨울의 뚝및 따스한 곳에서 친구와 나란히 앉어 까먹고, 돌로
얼음판을 깨어 고기를 잡기도 했다.
첫사랑의 아픔을 뒤로하고 떠난 밀양을 그 뒤 많은 세월이 흘러서 몇번 가보기도 했지만, 옛날과 같은 감정은
일어나지 않고, 아픔도 자꾸 무디어져 그냥 흐르는 남천강의 물결을 바라보는 느낌이였다. 꼭 할 말이 있어
한번은 만나고 싶었다던 S와의 조우도 우리들의 아픔을 다시 들쳐내,돌릴수 없는 세월을 확인하고, 현실을
담보할 수없는 상처는, 그대로 덮을 수밖에 없는 또다른 아픔을 남기고 떠난 것이였다.
좋아했던 친구, 相의 기억도 패낼 수없는 현실이라 혼자서 강뚝을 거닐며 생각하다 돌아오고, 최근 1-2년에
한번씩, 상의 집을 찾아 아버님께 인사드리는 것이지만, 90대의 아버님이 언제까지 우리들의 기억과 우정을
연결시켜 주실지 알수없다. 그러나 相의 기억은 S와 함께 언제라도 마음만 먹으면 항상 나를 감싸기도 한다.
남천강뚝을 따라 백송길을 걸으며, 강물의 물결위에 빛나는 추억들이 눈부시는 것도, 어둡고 긴 터널의 삶을
철없이 휘젓고 경박하게 살아왔음을 알고 느끼는 오늘의 마음이 더욱 애처롭기 때문일 것이다. 주위의 많은
이들, 상처를 주고 받고, 기쁨과 슬픔도 섞어가며 아픔속에 맴돌았던,그들이 더욱 더 아름답게 생각되는 아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