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석 어머님
현석 어머니
세월이 너무 빨라 친구가 멀리 간지도 벌써 6년이 가까이 되었군요.. 해마다 하기 휴가가 되면
친구를 생각하고 , 아침마다 출근하면서 종종 생각을 떠 올리기도 합니다.유난히도 햇살이 뜨거웠던
그 해 8월을... 인간은 누구나 살다 떠나는 것이니 시간의 차이만 있을 뿐이니,. 친구도 하늘 나라에서 잘 있겠지요..
현석군의 결혼식에는 꼭 갈려고 했는데, 청접장을 기다리다 저는 7월인줄 알아, 어제 이석정 사장에게
전화를 하니 벌써 치렀다고 하더군요.. 속으로는 저가 안와 섭섭히 생각하였을 것입니다. 정말 이번에는
화환도 보내고 꼭 참석할려고 했는데, 죄송하게 되었군요..
이제 아들 딸들이 다 잘 자리잡고 있으니, 현석 어머님의 건강과 일상이 즐거우시리라 생각합니다.
물론 친구생각에 마음이 아프겠지만, 말씀드렷드시, 어차피 누구나 회자정리의 인간사를 면치못함을,
生者라도 잘 살아가면서 위안삼으십시요..
어차피 과거에 집착하지 마시고, 미래의 생각에 좋은 일들만 가득하기를 기원합니다.. 이번에도 어쩌다
전번처럼 이 사장 편으로 마음을 전하게되어, 너무 죄송한 마음 금할 길 없습니다. 그래도 항상 친구를
잊지않고 있으니, 하늘에서 친구가 웃겠지요.. 니는 임마, 항상 덤벙돼서 문제다-하고.. 건강하십시요.
2010,7.1일
11시반경 이 사장을 대저역에서 피컵하여 낙동강 강변의 작은 식당에서 점심을 같이 했다. 몸이 아파 염라대왕앞까지 갔다
돌아와 지금 투병중인 이 사장이 조금씩 외출을 하고 있으며, 대공원 호수가를 산책하기도 한단다. 어제 전화를 했더니 반가워
바로 오늘 온다고 해, 우리 둘의 친구였던 섭이의 이야기도 하며, 건강을 화두로 삼고 세월의 빠름을 따지다 돌아갔다.
섭이와 함께 해백회를 할때, 알게된 친구지만 사업가다운 호탕함과 긍적적이고 적극적인 사고의 사람이라, 금방 친하게 되었고
다 죽어간다고 할때도 전화를 하면 웃으며 받곤하는 한량이였다. 항상 치부책이라고 내놓은 작은 수첩엔 여자들 이름과 전화번호가
빽빽하였다. 죽은 섭이와 친해, 나하고는 술자리만 몇번 그것도 치부책에 있는 여자들을 불러모아 노는 자리에서 만났지만,
그와는 섭이가 가고난 후 더 친하게되었다. 회사도 자주 찾아오고, 알고보니 나의 절친한 고교동기와도 아는 사이라 더 가깝게
했던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섭이가 가고 난후, 몇개월 후, 섭이 동생이 가고, 그 후 몇개월 후 이 사장도 쓰러졌던 것이다, 다행히
수술은 하지않고 어찌하다 거의 다 나았다고 회사로 와, 식사를 한적이 있다. 등산복 차림인데, 좀 나았다고 설악산도 갔다왔단다.
그후 다시 넘어져 한 2년간 대학병원에 왔다갔다 하더니, 이제 조끔 나와 다니게 된 것이다. 전화로 가끔 통화를 하고 작은 마음도
한 두번 보냈지만, 직접 만난 것은 2년만이다. 섭이의 딸-현이가 강원도서 결혼식을 치를때, 이사장 부인과 계원이라 간다고 해.
부조만 보내고 말았는데, 섭이의 부인이 그 후 감을 한상자 집으로 보내고 집사람과 통화를 하였다고 한다.
집사람과 섭이의 부인과는 전부터 잘 모르는 사이고, 친하지 않아 지금도 왕래가 없다. 섭이가 죽은 후에도 부인이 사업을 계속
한다고 이야기만 듣고 있었다. 몇년전 딸 현이땜에 자문을 구하는 전화가 왔었는데, 시원한 대답을 못해준 이래 그 뒤에는 소식이 없다가
딸, 현이 결혼때 연락이 왔었다.. 이번 아들,석이의 결혼식에 갔는데, 내가 보이지 않아, 우리 집사람이 왔다 갔는가?하고 생각했다고 한다.
이야기 끝에 이사장왈 죽은 사람만 손해라고 자기는 열심히 해서 건강을 회복해 오래 살아야겠다고 하며 웃는다. 식장의 하객들뿐만 아니라
식구들 모두 즐거운 모습으로 행동을 하는 것을 보니 더욱 더 그런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죽으면 잊혀지니, 건강해야된다고 맞장구를 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