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15

2007년 조선일보 블로그

산같이 산과 같이 2010. 6. 29. 22:27

봄길    2007/03/23 04:08

봄 길을 걷는다는 것은 생각만 해도 좋다.

아직 푸릇 푸릇 새 싹을 터트린 나무가지 사이에  강건너 산에는 보라빛 봄의 색깔이 그윽하다.

이젠 둘이가 아니라도 좋다. 마음에 품고가는 추억이 있고 소중한 그리움이 있다면 봄의 산책길은

외롭지 않을 것이다.

 

내가 내 삶의 소중함을 안다면 금년에 오는 봄은  애틋하고 명년에 봄은 더욱 애틋할 것이다

 

 

X-방멩이    2007/03/23 03:59
겨울의 동해 바다는 바람이 매섭다. 포항은 당시 풍자적으로 해병끼리 5대 불순이라 하여 , 기후불순, 정조불순, 언어불순 등등 열악한 환경으로 비유하곤 했는 데, 그 중 정조 불순은 지금의 현실에서 볼 때 누가 누구를 탓할 수 있겠냐 마는 , 기후 불순은 아마 지금도 겨울이면 그 바닷가는 마찬가지라 생각된다.

 

몇개월에 한번씩 바뀌는 해안 방어의 시기였다. 대대본부의 막사를 감포의 아늑한 산 밑에 차려놓고 해안 중대및 파견초소를 지원한다. 그때만 해도 인적이 드문 동해 바닷가를 트럭을 타고 다니며 포말되어 오는 파도와 파아란 해안선을 보는 것은 해병에게는 낭만적일수 있었다.

 

대대 본부에서 막 점심을 끝내고 있었는데 본부중대 전체 집합이란다. 새로 월남에서 귀국한 X방멩이 선임하사(중사였다)의 집합이다. '열중 쉬어-차렷" 몇번하다 눈을 돌린 두명을 앞으로 나오란다. 앞으로 나온 두 해병을 그대로 몽둥이로 몇번치고 발 길질을 하니 이마에 피가 튀고 쓰러져 비틀 거린다. 월남전에 딱은 실력인가? 피 칠갑을 시킬 작정인가? 모든 중대원들이 히야시 되어 있는데, X 방멩이 왈 "지금부터 순검 시간까지 대대본부 주위를 각 부서별로 분담하여 높이 2M의 가시나무 울타리를 만들어라 "하며, 직접 울타리를 만드는 법을 데모(보여)해 준다.

 

기가 차는 것은 울타리 치는 법은 금방 전수를 받었으니, 되었다 치더라도 그 마른 가시나무는 어디서 구해온단 말인가? 그러나 순검시간이 다 되어가니 본부대대 주위의 약 2-3백 메타가 거의 가시나무로 울타리가 쳐지고 있고, X방멩이가 회심의 미소를 짓고 걷고 있는 동안 포항 감포지역 현병대에서 난리다. 온통 주위 주민들의 민원 전화가 바리바리 걸려온 것이다. 겨울 땔감을 하기 위하여 집 뒤 언덕에 쌓아놓은 가시나무를 군인들이 막부가내로 가져갔다는 것이다.  미소짓는  X방멩이, 그러나 보급반에서는  별도 비축해 놓았던 B-자금 같은 기름 30통을 내놓고 주민들의 민원을 해소 시켜야했다. "아무턴, 새끼, X방멩이는 멋있어" 하는 대대장의 소리를 보급관과 나는 직접들었다.  해병장교다운 카리스마였다.

 

어느날 밤 그 X방멩이와 나는 각 초소를 순찰하는  당번이 되었다. 뚜꺼운 파커를 입고 추운밤 걸어서 사십몇번 초소까지 일일히 확인하며 걷는 것이다. 떠나기 전에 부대앞의 주막에서 우리는 막걸리와 동태 얼린것을 설어서 회처럼 안주삼아 Start한 것이다.

 

"야 ! 김수병, 말이야-직업해병 생활은 마도로스(뱃사람)와 같다-말이야" 큰 키에 체격도 당당한 '방망이가 술이 들어가 취기가 오르니 마음을 열며' 인간적인 소리가 나왔다. 나는 이해할수 있다. X방멩이 주위에 도는 이야기를 우리는 알고 있었기에. - 부인이 있었는데 워낙 술을 먹고 땡깡을 치고 폭력을 행사한지라, 이 여인이 '방멩이'가 월남 간후에 오천거리에서 월남가는 반반한 해병하사관들에게 몸을 주면서 '월남가거던 X방멩이 총맞어 죽어라'고 하며 한을 풀었다는 것 아닙니까.  그 소리를 들은 방멩이는 월남에서 돌아버려 복수의 한을 갈고 있었고, 돌아 올 때쯤 이 여인은 포항에서 사라져 버렸지요.

 

방멩이와 나는 만취가 되어 순찰을 돌고 있었다. 3십 몇번 초소로 가는 길에 방해물이 나타났다. 작은 시내가 있어 , 둘러 갈려니 길이 멀고 밤 바다는 너무 춥고 건네야 할 형편이다. X 방멩이 왈 " 김 수병, 야,두사람다 벋을 필요 있나? 하는것이 였지요. 물론이지요.  좋소 하며 내가 워커를 벋고, 방멩이는 내 군화를 들었다. 물은 차겁고 몸을 비틀 거린다. 악을 선 기억이 난다.그러나  워낙 거구인데다 나역시 술이 되어 시냇물 중간에서 쓰러져 버련던 것입니다. 둘다 온통 물을 뒤집어 쓰고 엉망이 되었지요. 그 추위에 얼지 않기 위하여 우리는 뛰면서 순찰을 돌고 마지막 43번 초소까지 갔던 것입니다.

 

그후 방멩이와 나는  친한 형제처럼 지나게 되었는 데 제대후에는 한번도 만난적이 없지만 문득 그일이 오늘 생각난다.  해안 방어를 마치고 본대에 들어와서 제대할 때까지 우리는 서로 이해하면서 종종 술자리를 함께 했던 것이지요.  X 방멩이 선배님, 부디 사회에서 그 상처의 앙금에서 벋어나 행복한 가정을 이루고 건강하게 잘 지내고 계시기를 마음 속 깊이 바람니다.    인간은 알고 보면 다 외로운 것이지요.

 

X방멩이 선임하사님 - 정말 보고싶네요. 어떻게 지내시는지?

"야, 좃방멩이 니가 그립다"...하면 안되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