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15

전화

산같이 산과 같이 2009. 6. 10. 15:38

얼굴 붉히며 말을 해야 되는 것도 전화로는 쉽게 이야기할 수 있다. 부끄러움을 보이지 않고 마음 두껍게 넘어간다.

그러니 거의 일년만에 일본 고모와 전화를 한 것같네.. 작년 인공심장으로 이식하는 큰 수술후 병원에서 조리중이라

전화를 몇 달 못하고, 퇴원할려고 할 즈음에 당신의 하나 밖에 없는 남동생인, 나의 아버님이 돌아가셨던 것이다.

 

수술후의 회복기에 쇼크를 받을까 싶어, 전화를 못하고 문상온 고종사촌 형님에게 적당한 시기에 말씀드리라고

했던 것인데,  너무 늦어 전화기를 들기가 민망스러웠다. 반가히 전화를 받는 고모. 형님과 형수가 잘 해준다고

하신다. 해방되고 나서도 결혼한 몸이라 일본에 남아 평생 일본에서 사신 것이다. 한국에 몇 번 나오신 적이 있지만

지난 10년동안에는 심장이 약해 못 오셨다.

 

다행이 경제적으로 부족함이 없는 생활을 하고 계시기에 85세에도 인공심장 이식 수술을 했던 것이다. 동해선을 타고

내려가면 아따미와 또 더 밑의 바닷가에 별장을 각각 가지고 계실 정도로 형편이 좋아서 노년에도 당신 마음대로

하시는 것이다. 원래 글을 써고, 엄격한 자기관리의 분이라, 자식이라고는 하나 뿐인 고종 사촌 형님댁과 출입구를

달리 하며 3층집에서 살고 계신다. 수십년전 부터 방문하는 도우미와 별도 생활을 하며, 책을 읽고 편지를 써고

때때로  글을 써시고 하셨다. 4년전 고모부가 돌아가셨을 때, 장례식에서 본 당신께선 꽤 건강하셨는데..일년이 무서운

세월이 되신 것이다.

 

작년에 여동생과 방문할려고 했는데, 고종사촌 형이 안정을 취하는데 시간이 필요하다고 좀 미룬것이 이렇게 된 것이다.

이번 8월에 여동생과 함께 인사드리러 가겠다고 하니 좋아하신다. 특히 여동생은 일본서 7년 정도 있을 때 고모의 신세를

많이 지고 또한 편하게 지내는 사이다.고모부 장례식때도 여동생과 함께 갔던 것인데, 집안 아버님 초상후로는 여동생도

고모와 통화를 안하고 있었던 것이다.

 

고모가 썼던 책 '유리탑'- 머리말에  "고양시에 사는 남동생 집 거실에 결려있는 가족사진들 중에서 유난히 눈에 띄는 사진이 있다.

내 결혼사진이다. 누렇게 변색된 그 흑백사진 한 장을 보고 이미 중년에 접어든 조카들과 그들이 낳은 아이들, 그리고

그 아이들의 배우자를 포함한 10여 명이 나이를 불문하고 모두 똑같이 물었다고 한다. "이 사람은 누구에요?" 이 이야기를

듣고 나는 비통함에 할 말을 잃고 말았다......중략......그리고 이 글을 잃는 여러분들 아버지의 누나가 일본이라는 나라에서

어떤 생각을 가지고 살아왔는지, 생각해볼 수 있는 기회가 되길 바란다...." 는 내용이 들어있다.

 

돌아가신 할머님을 너무나 빼닮은 그 모습과 엄격한 성격, 그 고모의 한 시대가 조용히 사라지는 것을 슬퍼게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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