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한자유
소의 그렁그렁한 눈으로 들여다보면
산같이 산과 같이
2008. 4. 29. 11:15
소의 그렁그렁한 눈으로 들여다보면
황재연
내 몸 속에 편두통 약이 있고
약을 먹고 뒤척이는 불면의 긴 긴 밤이 있고
말라 버린 씨방이 있고
빙하가 있고
속을 가늠할 수 없는 검은 늪이 있고
떠나버린 첫사랑이 있고
스며 든 빗물이 있고
노래도 침묵도 삼켜버린 몇 필의 파도가 있고
희망을 기다리는 빨간 우체통이 있고
속살 깊은 바다가 있고 지울 수 없는 물결이 있고
서러운 건 보내고 혼자 남은 빈 술병이 있고
이 모든 것들 껴안고
하루에도 몇 번씩 접었다 펴는 그리움이 있고
어디로 고삐 쥐고 데려갈 수도, 멀리 갈라놓을 수도 없는
이 눈물겨운 것들 위에
소리 없이 깃 드는 쇠잔한 저녁 빛